독서모임 발제문 · 북키토끼

『채식주의자』 한강

「거부는 폭력인가 저항인가」

1층 · 장면 — 이 장면은 무슨 뜻이었을까

  1. 영혜는 피가 흥건한 고깃덩이가 나오는 꿈을 꾼 뒤 고기를 끊고, 냉장고의 고기를 모두 버린다. 까닭을 묻는 남편에게 영혜는 꿈을 꾸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1.영혜가 끝내 「꿈」 말고 다른 이유를 대지 않은 건 설명할 말이 없어서였을까요, 설명해도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었을까요?

    ↳ 1부에서 영혜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건네지지 않는 짧은 독백으로만 나와요.

  2. 가족 모임에서 아버지는 영혜의 뺨을 때리고, 가족들이 붙잡은 사이 억지로 고기를 입에 밀어 넣는다. 영혜는 고기를 뱉어 내고 과도로 자기 손목을 긋는다.

    2.그 순간 영혜가 칼끝을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몸으로 돌린 것은 무엇에 대한 대답이었을까요?

    ↳ 영혜의 몸은 이 소설 내내 누구의 것으로 다뤄지는지 떠올려 보세요.

  3. 3부에서 병원에 있는 영혜는 물구나무를 서고, 언니 인혜에게 자신은 이제 먹지 않아도 되며 햇빛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3.나무가 되겠다는 영혜의 말에서 들리는 것은 삶을 내려놓는 소리일까요, 처음으로 제 방식대로 살겠다는 소리일까요? 그 둘은 구분될 수 있을까요?

2층 · 해석 — 두 가지로 읽힌다

  1. 소설의 세 부분은 각각 남편, 형부, 언니의 눈으로 쓰였다. 영혜는 짧은 꿈 독백 말고는 자기 이야기를 직접 하는 자리가 거의 없다.

    4.영혜의 목소리를 비워 둔 이 구성은 영혜를 끝까지 남의 시선에 가두는 또 하나의 폭력일까요, 그 시선들을 드러내는 정직한 방법일까요?

    • □ 시선을 되풀이한다 — 독자도 결국 남편·형부·언니의 눈을 빌려서만 영혜를 보게 되고, 영혜의 속마음은 끝까지 해석당할 뿐이다.
    • □ 시선을 드러낸다 — 세 사람이 저마다 자기 필요대로 영혜를 읽는 모습이 나란히 놓이면서, 그 시선들 자체가 폭로된다.
  2. 비디오 작가인 형부는 영혜 몸에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사로잡힌다. 그는 영혜의 몸에 꽃을 그려 촬영하고, 결국 자기 몸에도 꽃을 그려 영혜와 관계를 맺는다.

    5.형부와 보낸 그 시간은 영혜에게도 무언가를 얻는 시간이었을까요, 형부의 욕망에 쓰인 또 하나의 폭력이었을까요?

    • □ 영혜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 꽃이 그려진 몸으로 있을 때 영혜는 이 소설에서 드물게 편안해 보이고, 그 작업에 스스로 응한다.
    • □ 또 하나의 폭력이다 — 영혜는 이미 병원을 오가던 사람이었고, 형부는 그녀를 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작품의 재료로 보았다.
  3. 인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매를 가장 많이 맞은 게 영혜였다고 떠올린다. 인혜 자신은 맏딸로서 묵묵히 견디고 성실하게 사는 쪽을 택해 왔다.

    6.인혜는 영혜와 정반대의 길을 간 사람일까요, 영혜가 간 길을 다른 방식으로 참고 있을 뿐인 사람일까요?

    • □ 정반대의 사람 — 인혜는 가게를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끝까지 삶 쪽에 서 있고, 병원비를 대며 영혜를 붙잡는 것도 인혜다.
    • □ 같은 길을 참는 사람 — 3부의 인혜는 자기가 견뎌 왔을 뿐 한 번도 제대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흔들리고, 영혜를 보며 자기를 본다.

3층 · 나라면 — 그 자리에 내가 선다면

  1. 영혜가 고기를 끊자 남편과 부모, 형제들까지 한목소리로 걱정하고 나무라며 다시 먹이려 한다. 모두 영혜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7.가족 모두가 나를 걱정한다며 한 가지를 그만두라고 한다면, 그 걱정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무엇까지 내줄 수 있을까요? 관계를 잃더라도 끝까지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영혜의 남편은 떠났고 다른 가족들도 발길이 뜸해진다. 인혜는 병원비를 대고 면회를 다니며 거의 혼자 동생을 떠맡는다.

    8.내가 인혜라면, 내 삶이 함께 무너지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동생 곁에 남겠어요? 손을 놓는다면 그 선은 어디일까요?

  3. 음식을 거부하는 영혜에게 의료진은 관을 꽂아 강제로 먹이려 하고, 인혜는 몸부림치는 동생을 곁에서 지켜본다.

    9.내가 보호자라면, 동생이 그토록 거부하는 강제 급식에 동의하겠어요? 동의하면 동생의 뜻을, 거부하면 동생의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4층 · 논쟁 — 정답이 없는 질문

  1. 의사와 가족은 영혜의 상태를 치료해야 할 병으로 보고, 영혜는 끝까지 먹지 않는 쪽을 택한다. 소설은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10.스스로를 해치는 방식의 거부도 한 사람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할까요?

    • □ 존중받아야 한다 — 영혜를 「고치려는」 손길—아버지의 손, 강제 급식—은 하나같이 영혜를 더 깊이 몰아넣었다.
    • □ 막아야 한다 — 영혜는 눈에 띄게 말라 가며 목숨이 위태로워졌다. 선택이라는 말로 지켜보기만 하는 건 방관이다.
  2. 형부는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린 영상에서 자신이 평생 찾던 이미지를 발견했다고 느낀다. 그 영상은 병을 앓는 처제의 몸을 빌려서만 만들어질 수 있었다.

    11.예술 작품은 그것을 만든 과정의 윤리와 떼어서 평가해야 할까요?

    • □ 떼어서 봐야 한다 — 형부가 찍은 꽃과 몸의 이미지는 그가 오래 매달려 온 예술적 물음의 답이었고, 작품은 작품대로 남는다.
    • □ 뗄 수 없다 — 그 이미지는 영혜의 병과 몸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정의 폭력이 이미 작품 안에 찍혀 있다.
  3. 영혜의 남편은 특별한 데라고는 없어 편해 보인다는 이유로 영혜와 결혼했다. 영혜가 달라지자 그는 그녀를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12.결혼한 사람은 상대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도 곁을 지켜야 할까요?

    • □ 지켜야 한다 — 남편은 영혜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떠났고,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인혜의 몫이 되었다.
    • □ 강요할 수 없다 — 남편이 약속한 상대는 평범한 영혜였고, 나무가 되려는 영혜는 그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