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의미는 찾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1층 · 장면 — 이 장면은 무슨 뜻이었을까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빼앗겨도 인간에게 남는 마지막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선택하는 자유다.
1.굶주림과 폭력 앞에서 「태도를 고를 자유」는 정말로 누구에게나 있었을까요, 살아남은 사람이 나중에 붙인 이름일까요?
↳ 프랭클이 스스로 살아남은 이유 중 많은 부분을 운으로 돌리는 대목도 함께 보세요.
혹독한 행군 중에 프랭클은 생사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녀와 대화한다. 그 순간 그는 사랑이 인간이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목표라는 걸 깨닫는다.
2.아내가 살아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이어진 이 대화는 현실에서 도망친 걸까요, 현실을 버티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었을까요?
프랭클은 1944년 크리스마스에서 새해 사이 수용소의 사망률이 유난히 높았다고 전한다. 크리스마스에는 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3.희망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면, 수용소에서 희망은 품어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경계해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2층 · 해석 — 두 가지로 읽힌다
프랭클은 니체의 말을 인용해,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은 거의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쓴다. 그는 빼앗긴 원고를 다시 쓰겠다는 목표를 붙들었다.
4.「살아야 할 이유」는 살아남은 원인이었을까요,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었던 결과였을까요?
- □ 원인이다 —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잃은 동료들이 급격히 무너지는 걸 여러 번 보았다.
- □ 결과일 수 있다 — 가스실 선별은 의미와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프랭클도 가장 선한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쓴다.
프랭클은 수용소에도 품위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수감자 가운데서 뽑힌 카포가 더 잔인할 때가 있었고, 몰래 약을 사다 준 수용소 책임자도 있었다.
5.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는 프랭클의 관점은 희망을 주는 말일까요,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말일까요?
- □ 희망을 주는 말 — 어떤 제도 안에서도 사람은 품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가해자도 개인으로 책임져야 한다.
- □ 구조를 가리는 말 — 수용소라는 체제가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었다. 품위를 개인의 선택으로 보면 체제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프랭클은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노의사에게, 만약 선생님이 먼저 죽었다면 아내가 이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는 조용히 돌아간다.
6.고통에 의미를 붙여 주는 이 방식은 위로일까요, 고통을 견디라는 요구일까요?
- □ 위로다 — 고통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아내 대신 그것을 짊어졌다는 의미가 생기자 견딜 수 있게 됐다.
- □ 견디라는 요구다 — 모든 고통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말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들 수 있다.
3층 · 나라면 — 그 자리에 내가 선다면
해방 뒤 집으로 돌아간 많은 수감자들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프랭클 역시 아내와 가족을 잃었다.
7.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삶을 다시 시작할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면, 무엇을 붙잡겠어요? 그게 이미 떠난 사람을 위한 것이어도 괜찮을까요?
프랭클은 수용소 해방 직전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돌보던 환자들 곁에 남기로 한다.
8.나 혼자 살아남을 기회와 나를 믿는 사람들 곁에 남는 것 사이에서, 남는 쪽이 죽음일 수도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어요?
프랭클은 의미를 삶에게 묻는 게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묻고 있으며 우리는 그 물음에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9.지금 내 삶이 나에게 묻는 한 가지를 끝까지 책임지려면 다른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걸 포기할 수 있겠어요?
4층 · 논쟁 — 정답이 없는 질문
프랭클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것을 견디는 태도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0.고통에는 의미가 있다고 말해야 할까요?
- □ 말해야 한다 — 프랭클과 동료들은 고통에 의미를 줄 수 있을 때 무너지지 않았다.
- □ 말해서는 안 된다 — 고통에 의미를 붙이면 없앨 수 있는 고통까지 참고 견딜 것으로 바뀌고, 가해자의 책임이 흐려진다.
프랭클은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은 자기 태도를 선택할 수 있고, 따라서 자기 행동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는 자유는 책임과 함께여야 한다고 말한다.
11.극한의 강요 속에서 한 행동에도 개인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까요?
- □ 져야 한다 — 프랭클은 같은 조건에서도 다르게 행동한 사람들을 보았다. 선택이 있었다면 책임도 있다.
- □ 묻기 어렵다 — 살아남기 위해 한 일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심판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프랭클 자신도 운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프랭클은 행복은 좇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몰두한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12.삶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의미가 되어야 할까요?
- □ 의미여야 한다 — 수용소에서 사람을 버티게 한 건 기분 좋은 순간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과 끝내야 할 일이었다.
- □ 행복도 목표일 수 있다 — 의미만 좇는 삶은 지금의 기쁨을 늘 미래의 무언가에 저당 잡힌다. 평범한 행복을 원하는 것도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