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발제문 · 북키토끼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사랑해야 한다」

1층 · 장면 — 이 장면은 무슨 뜻이었을까

  1. 모모는 파리 벨빌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 위층에서,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 키우는 늙은 로자 아줌마와 산다. 로자 아줌마는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 만큼 늙고 병들어 간다.

    1.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서로에게 엄마와 아들이었을까요, 서로를 붙든 두 외로운 사람이었을까요?

  2.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밀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대답하고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2.하밀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대답하고 부끄러워했을까요?

  3.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병원에 끌려가 억지로 목숨을 이어 가지 않도록, 그녀를 지하의 「유대인 동굴」에 숨긴다. 그리고 그녀가 숨을 거둔 뒤에도 몇 주 동안 곁을 지킨다.

    3.모모가 로자 아줌마를 숨긴 것은 사랑이었을까요, 너무 어린 아이가 감당한 잔인한 선택이었을까요?

2층 · 해석 — 두 가지로 읽힌다

  1.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오래 곁에 두려고 그의 나이를 속였다. 모모는 자신이 열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4.나이를 속인 로자 아줌마의 거짓말은 사랑이었을까요, 이기심이었을까요?

    • □ 사랑 — 그녀는 모모를 잃는 것이 두려웠고, 그가 조금이라도 더 아이로 지내길 바랐다.
    • □ 이기심 — 그녀는 자기 외로움 때문에 모모의 시간을 멈춰 두었다. 모모는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랐다.
  2. 로자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유대인이고, 모모는 아랍계 무슬림 아이다. 그녀는 모모에게 그의 종교를 존중해 가르친다.

    5.종교와 출신이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 된 것은, 이 소설에서 특별한 일일까요, 당연한 일일까요?

    • □ 특별한 일 — 두 사람은 서로 미워하라고 배운 세계에서 왔다. 그 경계를 넘은 것 자체가 이 소설의 기적이다.
    • □ 당연한 일 — 벨빌의 가난한 사람들은 출신보다 서로의 필요로 살아간다. 사랑 앞에서 경계는 원래 별것 아니다.
  3. 모모는 의사들이 로자 아줌마를 억지로 살려 두려는 것에 맞서, 사람은 자기 뜻대로 죽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6.모모의 생각은 아이다운 순진함일까요, 어른들이 외면한 진실일까요?

    • □ 순진함 — 모모는 아직 어려서 삶을 붙잡는 의학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한다.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쉽게 정할 일이 아니다.
    • □ 외면한 진실 —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서 기계에 매달려 죽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 뜻을 지킨 사람은 모모뿐이었다.

3층 · 나라면 — 그 자리에 내가 선다면

  1. 모모는 버림받은 아이지만, 자기를 돌봐 준 로자 아줌마를 끝까지 돌본다.

    7.나를 키워 준 사람이 늙고 약해졌을 때, 나는 어디까지 곁에 있을 수 있을까요?

  2. 모모는 우산에 옷을 입혀 「아르튀르」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처럼 데리고 다닌다.

    8.외로울 때 내가 기대던 작은 물건이나 습관이 있었나요?

  3. 모모는 이야기 마지막에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9.지금 나에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4층 · 논쟁 — 정답이 없는 질문

  1. 이 소설은 가난, 매춘, 버려진 아이들, 이민자 거리를 다루지만, 열 살(이라고 믿는) 아이의 엉뚱하고 따뜻한 말투로 쓰였다.

    10.비참한 현실을 아이의 유머로 그리는 것은 그 현실을 더 잘 보여 줄까요, 가볍게 만들까요?

    • □ 더 잘 보여 준다 — 웃음 사이로 보이는 슬픔이 더 오래 남는다. 아이의 눈이라서 어른들이 외면한 것이 보인다.
    • □ 가볍게 만든다 — 귀여운 말투가 가난과 폭력의 무게를 덜어 낸다. 독자는 울고 나서 안심해 버린다.
  2.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가족이었다. 십여 년 만에 모모의 친아버지가 찾아오지만, 로자 아줌마의 둘러댐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진다.

    11.가족은 피로 정해질까요, 함께 보낸 시간으로 정해질까요?

    • □ 함께 보낸 시간 — 모모를 키운 것은 로자 아줌마다. 이 소설은 가족을 사랑과 돌봄으로 다시 정의한다.
    • □ 피도 무시할 수 없다 — 모모는 끝까지 자기 엄마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뿌리를 알고 싶은 마음도 가족의 일부다.
  3.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발표해 공쿠르상을 받았다. 그는 이미 같은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12.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읽을 때, 우리는 작품을 더 정직하게 읽게 될까요?

    • □ 더 정직하게 읽는다 — 유명한 이름의 기대 없이 읽으니 작품 자체로 평가받았다. 그래서 두 번째 공쿠르상이 가능했다.
    • □ 이름도 작품의 일부다 — 작가의 삶을 알고 읽으면 더 깊이 보이는 것이 있다. 이름을 지운다고 편견이 다 사라지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