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비범한 사람에게 다른 법이 허락되는가」
1층 · 장면 — 이 장면은 무슨 뜻이었을까
전당포 노파를 죽인 라스콜니코프는 훔친 지갑과 물건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어느 마당의 돌 밑에 숨겨 버린다.
1.훔친 돈을 한 번 열어 보지도 않았다면, 그는 그 살인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던 걸까요?
↳ 그가 쓴 「범죄에 관하여」라는 글과 나폴레옹 이야기를 함께 떠올려 보세요.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의 방에서 그녀에게 성경의 라자로가 되살아나는 대목을 읽어 달라고 한다. 소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읽는다.
2.살인을 저지른 그가 하필 이 이야기를 소냐의 목소리로 듣고 싶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도 라스콜니코프는 한동안 자기 이론이 틀렸다기보다 자신이 견디지 못해 실패했다고 여긴다. 그러다 어느 날 소냐의 발 앞에 엎드려 운다.
3.그를 마침내 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변화는 뉘우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2층 · 해석 — 두 가지로 읽힌다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만 죽일 생각이었지만, 마침 들어온 노파의 동생 리자베타까지 죽이게 된다. 그 뒤 그는 열병과 불안에 시달린다.
4.그의 무너짐은 「비범한 사람」 이론이 틀렸다는 증거일까요, 그 자신이 이론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증거일까요?
- □ 이론이 틀렸다 — 리자베타는 그의 계산에 없던 사람이다. 사람을 목적의 수단으로 셈하는 순간, 셈 밖의 사람이 죽는다.
- □ 그가 감당하지 못했다 — 그 자신도 오래 그렇게 믿었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논리의 반박이 아니라 제 양심과 몸이었다.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증거 없이 라스콜니코프를 몰아붙이고 자수를 권한다. 소냐는 네거리에 나가 땅에 입 맞추고 모두에게 고백하라고 말한다. 그는 결국 경찰서에서 자백한다.
5.그의 자수는 뉘우침에서 나온 걸까요, 더는 버틸 수 없는 고통에서 빠져나오려는 선택이었을까요?
- □ 뉘우침 — 그는 소냐의 말대로 땅에 입을 맞추고 제 발로 경찰서에 간다. 잘못을 인정하는 첫걸음이다.
- □ 고통의 출구 — 자수한 뒤에도 그는 한동안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를 움직인 건 죄책감보다 고립이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추악한 소문을 몰고 다니면서도 카테리나의 아이들이 살 길을 돈으로 마련해 준다. 그리고 두냐에게 거절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6.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가 끝까지 갔을 때의 모습일까요, 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일까요?
- □ 라스콜니코프의 끝 — 선악의 경계를 넘어도 된다고 믿는 사람이 결국 닿는 곳은 아무 의미 없는 공허와 죽음이다.
- □ 다른 사람 — 라스콜니코프에게는 괴로워하는 양심과 소냐가 있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붙잡을 사람이 없었다.
3층 · 나라면 — 그 자리에 내가 선다면
라스콜니코프는 선술집에서 한 대학생이 「쓸모없는 노파 하나를 죽이고 그 돈으로 수백 명을 살리면 어떠냐」고 말하는 것을 엿듣는다. 자기 생각과 똑같았다.
7.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한 사람에게 큰 해를 끼쳐 수많은 사람을 확실히 도울 수 있다면, 하겠어요? 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라 말하겠어요?
칠장이 미콜카가 뜻밖에 자기가 노파를 죽였다고 거짓 자백한다. 라스콜니코프는 가만히 있으면 빠져나갈 수도 있게 된다.
8.내 잘못을 다른 사람이 뒤집어쓰려 하고, 가만히 있으면 나는 무사하다면 스스로 나서겠어요? 나선다면 무엇을 잃는 걸까요?
누이 두냐는 가난한 오빠를 돕기 위해 마음에 없는 루진과 약혼한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희생을 받을 수 없다며 약혼을 깨뜨리려 든다.
9.가족이 나를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려 할 때, 고맙게 받겠어요,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막겠어요?
4층 · 논쟁 — 정답이 없는 질문
라스콜니코프는 글에서 뉴턴이나 나폴레옹 같은 비범한 사람은 인류를 위해 필요하다면 법과 양심의 선을 넘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10.더 큰 선을 위해서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 □ 그럴 수 있다 — 노예 해방이나 독재에 맞선 저항처럼, 역사를 앞으로 민 행동 중에는 당시의 법을 어긴 것이 많다.
- □ 그럴 수 없다 — 누구나 자기 목적을 「더 큰 선」이라 믿는다. 그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순간 리자베타 같은 사람이 죽는다.
라스콜니코프에게 진짜 벌은 감옥보다 먼저 찾아온다. 그는 가족과 친구에게서 멀어지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괴로워한다.
11.형벌은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 사람을 다시 사람 곁으로 돌려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 □ 돌려보내야 한다 — 라스콜니코프를 되살린 것은 형기가 아니라 소냐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벌만으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 □ 대가가 먼저다 — 두 사람이 죽었다. 죄인의 회복을 앞세우면, 피해자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정의가 흐려진다.
라스콜니코프는 스스로 자백했고, 재판에서는 그 점과 그가 가난한 이들을 도운 일 등이 고려되어 비교적 가벼운 형을 받는다.
12.스스로 뉘우치고 자수한 사람의 형벌은 줄여 주어야 할까요?
- □ 줄여 주어야 한다 — 자수는 진실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미콜카)을 구한다. 그 길을 넓혀야 더 많은 사람이 제 발로 나온다.
- □ 줄여선 안 된다 — 죽은 사람의 무게는 자수로 가벼워지지 않는다. 형량이 줄면 자수도 계산이 될 수 있다.